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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ile/생각

지나가는 것과 남는 것

정말 몇 달만에 '봄날은간다 ost'를 듣는다.
지난주는 찬수도 나도 오랜만의 출퇴근과 새로운 일에의 적응으로 심신을 잔뜩 긴장시킨채로 보낸 하루하루였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차려먹고 그림책을 보면서(이 책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책)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침대에 누워서 내 얘기를 듣던 찬수 눈꺼풀이 천천히 ... 위아래로, 마치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하는 긴 풀처럼 나른하게 움직였다.
"졸려?"
"응, 미안해... 왜 이렇게 졸리지? ... 난 가끔 A.I 생각나."
"왜?"
"그 꼬마가 잠에서 깬 다음에 엄마랑 같이 놀았는데... 저녁이 되니까 엄마가 침대에 누워서 '왜 이렇게 졸리지?' 그러면서 잠들잖아...
이렇게 누워있으면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 진짜 슬픈거같애, 우리 그거 진짜 슬프게 봤어, 그치?"
"어... 슬펐지"

찬수는 슬픈 영화나 얘기를 잘 잊지 못한다.
찬수의 가슴 어딘가를 건드린 슬픈 영화나 얘기는 영원히 어딘가에 남는다,
남아서 가끔 나른하게 이완된 순간에 떠오르는 모양이다.

봄날은 간다... 가 아마도 우리가 만나기 시작할때 함께 본 첫 영화였던 것 같다.
두고두고 그 영화 얘기를 하고, OST를 들을때는 영화 속의 끝나고도 끝날 수 없는... 슬픔-애틋함과, 그 영화를 처음 봤던 이십대의 우리,
그 음악을 수도없이 들었던 지나간 우리 둘의 시간과 공간들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천천히 지나간다...
모든 것, 모든 순간이 단 한 번을 마지막으로 지나가버리기때문에 어떤 것들은 가슴에 상처처럼 조금 아리게 남을 수 있는 것 같다, 영원히.
그런, 건드리면 꿈틀-하는 기억을 여러개 같이 가질 수 있다는게 다행이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버리는 것도 어쩌면 참 다행이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우리 가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릴 수 있었던 작은 몇 가지만이 영원히 남는 것이 참 다행이다.
그것이 슬픈 것이든 기쁨으로 충만한 것이든.

저녁에 얼굴 마주하고 담소하기도 짧고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서른 중반의 우리,
조금은 피곤하고 ... 종종 의욕과 회의를 번갈아 느끼면서도, 아직 조금은 더 스스로에게 욕심이 나는...,
우리의 - 지금 이 시간도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