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부터 한강을 산책하는데 습하고 찬 바람이 팔과 다리를 감았다 놓았다 하면서 빗물을 툭툭 떨구기도 했는데
오늘은 비는 그렇다 쳐도 바람이 세고도 요란하다.
그런 저녁, 찬수가 친구 만난다며 나갔다.
괜히 더 꾸깃꾸깃해보이는 반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나가는데, 다시 입혀주기에는 귀찮은 마음이면서도 안쓰러워서
얼굴 삼면에 뽀뽀를 둘러쳐주며 조심해서 다니고 신나게 놀고 오라고, 자유와 방종을 모두 허하노라고 오바를 해버렸다.
겁이 났다. 이런 바람 세고 비도 흩뿌리는 날, 어두운 저녁에 혼자 나가는 찬수 뒷모습을 보니...
하필이면 이런 음산한 날, 실로 몇 주만에 찬수가 혼자 외출을 한 것이다.
7월 중순 캐나다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늘까지 줄곧 '임찬~'하고 부르면
늦게라도, 귀찮다는 음성으로라도 대답해주는 거리에 있던 찬수가 혼자 친구를 만나러 나가고
컴컴한 집에 나는 혼.자. 있다.
마침 바람은 어찌나 센지, 단지 저 깊숙한 데서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며 더 거세져서는
거친 숨이라도 몰아쉬듯이 멈추지 않고 씨익-씨잉 소리를 내면서 문틈으로 들어온다.
그런 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내일 할 일이 많은데 다 못 할 것 같다며 걱정하는 찬수에게(얘는 매사에 걱정도 많다),
집안 청소며 정리를 다 해놓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쳐 놓고는 불도 안 켠 채 침침한 거실 램프만 간신히 눌러 켜 놓고는 그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오늘따라 한 구절 한 구절 연륜으로 쓴 것 같은 글귀에 나를 부끄러워하면서
창으로 차갑고 요란하게, 줄기차게 씽씽 들이치는 바람소리에 불안해하면서
조금 춥지만서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책을 읽었다.
책 속의 나이든 현명한 이가 내 마음을 살살 쓰다듬는다.
묵직하게 쓰다듬는다. 불안하고 조급하던 마음이 저-어 창 밖의 건물이며 나무가 점차 어둠에 묻혀가듯이 잠잠해지는 것만 같다.
강해져야지.
앞으로 무얼 해야될 지, 지치지 말고 고민해야지, 노력해야지.
혼자 있는 오랜만의 시간이 나쁘지 않다.
찬수에게 큰소리 친 대로 청소도 하고, 책도 더 읽고, 연신내 언니가 보라색으로 칠해준... 약간 그로테스크한 손톱 날을 세워 오랜만에 기타도 쳐야지.
오늘은 비바람 불고 으스스한 여름밤,
나는 오랜만에 어두운 집에 혼자 있다.
오랜만에 비도, 무서운 소리 내는 바람도, 어둠도, 잔뜩 쌓인 집안일도, 책도, 기타도 다~~즐기고 밤 늦~게 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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