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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블로그 좀 정리하려고 오래전 포스팅한 글들을 보고 있었다.
매 해 춘천에 모여서 같이 보냈던 언니들, 형부들, 그리고 댕글댕글한 조카녀석들 얼굴을 사진으로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너구리같은 웃음이 퍼진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결혼전 회사생활 할때의 글들도 본다.
참 철도 없고, 지금보다도 더 가볍고 줏대없고 남 생각 못하고 나만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도 제대로 생각할 줄 몰랐다.

지워버리고 싶은 글들이 한 두개가 아니지만 그냥 두련다.

나는 스무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살 부터가 가까스로, 겨우 시작이었다.
내가 정말 철이 들기 시작한건 찬수와 결혼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옛날 글들을 보면서 정말 감사한건
철없고 못난 나를 그래도 늘 그 안에 같이 담아주었던 가족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완전하다고 느낄만큼의 사랑을 언제나 채워주고 채워주고, ...
내가 흘리고 쏟아버려도 늘 다시 채워준 나의 반려인 찬수,
그리고 우리 형제들에게 가족이 무언지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가르쳐준 동글동글 조카들

그리고 결심한다.
조카들이 더 크기 전에 이모가 더 철들고 좋은 이모가 되어야겠다고.
좋은 어른, 좋은 인간 되어서 조카들에게 부끄럽지 말아야겠다고.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게 가끔은 너무 무섭다고 생각해서 찬수를 꼭 안으며 늙기 싫다고 말하곤 하지만
오늘 지난 내 기록들,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이만큼 세월을 보내고 지금의 내가 된 내가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어쩐지 세월을 이나마 이렇게 곱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찬수 덕인 것 같다.
찬수와 결혼해서 찬수에게 충분한 사랑과 기운을 나눠받고 얻어쓴 덕인 것 같다.


참 멋진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세월을 보내는 것
같이 나이들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기억을 갖게되고...
내가 기록한, 내가 좋아하는 그 사진들에, 내가 찍은 그 사진들 속에 그 사람이 항상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