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bile/canada

6월 시작



어제 늦게 잤음에도(그놈의 인생게임을 하느라) 불구하고 일찍 일어났다.
해가 많이 길어져서 침실 블라인드를 치지 않고 지내는 이 곳에서의 아침 늦잠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찍 일어났는데 아직 일은 하기 싫고... 해서 찬수 샤워하는동안 후딱 밥 볶았다.
일명, '아침 소'요리.
찬수는, 쳐다보지 말라고(소에게), 징그러워서 못 먹겠다더니 숟가락으로 막 으깨서 먹고 출근했다.


6월 1일
6월에는 프로젝트 마무리하며 쉴 예상을 하고 이 곳에 왔는데 어찌어찌하여 새 일을 시작하게 됐다.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여서 그냥 작업 리듬 정도 유지해줄 일로 생각하고 있다.
6월에 마무리되기로 예정된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쪽에서 피드백이 항상 느리다.
시간차를 면죄부삼아 나도 좀 느리게 회신하는 편. 안 그러려고 노력중이다.
지지부진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도 좀 있는데 멀리 있어 그런지 그 쪽이나 나나 세월아 네월아...
일이 끝났는데도 잔금을 주지 않는 곳도 있는데 연락하기가 너무 귀찮다. oTL

어제까지가 소득세 신고일이었나보다. 언제나처럼 찬수가 알아서 정리해 주었다.
작년의 내 수입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는데 같이 일한 업체들을 쭉 돌이켜 생각해보면...
확실히 클라이언트나 작업 성격이 쉽지 않았던 업체들의 일은 많이 정리를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변해서인지 일을 여러개 해도 이십대나 삼십대 초반에 받던 스트레스는 없다.
좋기도 하고... 너무 안일해졌나 싶기도 하고...
캐나다 와서 초반에 일에 대한 고민을 좀 많이 했는데... 요새는 다시 이 일을 조금 더 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대학 졸업하고 줄곧 한 일만 해 왔는데도 일에대한 마음이나 생각은 항상 달랐고
그 일이 나에게 주는 가치는 그야말로 내 나이에 따라 알록달록 많이 변해왔다.
요새 일은... 어쩌면 조금은 '알약'같은 느낌이다.
작업하는 동안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편안해지고 위안(?)받는 느낌도 많이 든다.

이제 곧 마흔이 될텐데도 무엇하나 이렇다 저렇다 단언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일이 특히 그렇다.
변하지 않는건, 일을 할때 부담 가져야할 것은 두 개라는 사실.
나 스스로에 대한 부담, 일 자체가 나에게 주는 만족감이나 스트레스에 대해서 나 스스로 책임져야한다.
클라이언트나 업체, CO-WORKER에 대한 부담(신뢰라고 해야겠지), 이 부분은 ... 어릴땐 내 커리어를 생각해서 갖는 부담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같이 수년간 일해온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수준의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더 어렵다.
'시간약속에 약한 나'이기때문에 이 부담은 대부분 '기한'에 대한 것이 된 것 같다.

어쨌든 어릴때를 생각하면 일이 많이 수월해졌고
매너리즘에 가까울지 모르는 작업진행 속에서도 지겹다기 보다는
일단 시작해서 진행하다보면 느끼게되는 가벼운 '몰입(flow)'들을 경험하게되니까 그냥 가볍게 '관둘래'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고민들을 하다보면 찬수는 어떤 생각으로 일하는걸까 궁금해진다.
우스운건, 우리 사이에 내가 일을 관두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럼없이 얘기가 오가고 심지어는 당장 관둬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결론지을 때도 많으면서 찬수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가 오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부부관계도 많이 달라졌지만...
내 주변의 많은 부부들이 아직은 그렇다.
'관둘래'의 고민을 .. 아직까지는 여자들이 더 일찍, 더 쉽게, 더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내 나이가 어려서 주변 사례를 볼 수는 없지만...
퇴직 후에도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일'을 원하는 중, 노년의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아마도 여자들이 '일'을 쉽게 놓을 수 있는 것도 그녀들에게는 여전히 가사와 육아의 일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맞고,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는게 제일 행복한 정답이겠지.
어쨌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한량'도 아무나 하는건 아니다. 아무나 그걸 즐길 수 있는 마음이나 정서는 아닌 것 같다.

바램이 있다면...
찬수와 비슷한 시기까지 같이 일하고, 비슷한 시기에 둘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중년 이후를 즐기는 거...
말이 쉽지 ... ... 말만 쉽지.

어쨌든 서른 다섯, 유월이 왔다.
인생의 반을 보내고(70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올해의 반을 보내고 있다.
여기 와서 초반에 일이나 나 스스로에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했는데...
지금 이렇게 마음이 편해진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나란 사람 적응이 느리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시간 속에서 참 쉽게 무뎌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무섭다.

어쨌든 유월, 나 여기 이렇게 조금 힘내면서 잘 서고 있다.
밥도 하고,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개'가 되었다. 렁렁.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