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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땅을 찾아온 사람들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고 그늘이 있고 상처가 있다.
경멸스러울만큼의 단점이 상처에 의한 것이고 그 상처의 아픔이 어땠는지를
모든 인간들이 서로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알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세상이라면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누군가를 경멸하면서 힘들거나 지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은, 내 모난 곳의 원인, 내 상처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헤아리기도 힘들만큼 힘들고 복잡한 흐름 속에 살고 있기 마련.

일요일에 토론토의 복잡한 관광지 몇 군데를 돌면서 이 나라에 그토록 많은지 몰랐던 두 나라 사람들에게 진을 쏙 뺐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무지막지한, 배려 없는 관광객들의 얼굴이나 행동이 자꾸 떠올라서 기분이 안 좋았다.
당분간 그 두 나라 사람들 얼굴이나 언어는 듣고싶지도 않을 정도로...

오후가 되니까 좀 낫다.
나도 그 사람들보다 나을 것 없는 인간이다.
누군가도 나를 그렇게 손가락질 한 순간도 분명히 많았을 것이다.

사람사이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게 늘 주변에 서 있는 사물인 경우가, 무생물인 경우가 나에겐 참 많다.
피곤하고 힘든 오늘 이른 오후에
베란다에 세워놓은 인조 화초의 잎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거실 한쪽 벽에 그림자로 하늘거렸다.
마치 날 향한 작은 무성 영화처럼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 리듬이 너무나 간절했다.
여긴 바람이 많다.
이 곳에서 좋아진건 저 인조 나무를 흔드는 바람과 어디를 가도 높고 건강한 나무들이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이 땅이, 이 곳의 땅이 좋은 땅이고 이 곳의 생명들을 건강하게 살찌우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다.

그런 이 땅의 생명력을 이해하는, 그 비옥한 땅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 땅이 좋아서 이 곳에 살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욕심에 의해 이 곳에 와서 힘들게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 욕심과... 그 욕심을 좇는동안 받은 상처들로 거친 얼굴로 거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이 비옥한 땅에 온 보람도 없이 말이다.

눈이 마주쳤을때 환한 미소를 짓는, 비옥한 이 땅을 닮은 풍요로운 표정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모여 살기를 바란다.
밀치고 배려하지 못하고 자신부터 앞세우고, 미안하다고 해야할 순간에, 고맙다고 해야할 순간에
마치 서로의 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종'의 동물들이 얼굴을 마주한 듯이
무표정의 시꺼먼 눈동자로 서로를 쳐다보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